드래곤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아키라를 기억하며

2024년 3월 8일 금요일, 내게 오늘은 그냥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그저 주말을 앞둔, 그리고 봄이 오고있다는 약간의 설렘만이 살짝 얹어진 그런 평일이었다.

그런데 네이버 뉴스에서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사망 소식을 보게 되었다.

나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드래곤볼의 조금 심한 광팬으로써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수십번을 봐오며 장면장면 마다, 캐릭터 하나하나 마다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작품 드래곤볼.

그 드래곤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아키라를 내 나름대로 표현하고 기억해보기 위해 이 글을 적어본다.

 





 

내 어릴적 첫 만화

드래곤볼 만화책

 

어릴적에, 학습지를 했었다. 아마도 재능교육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어느날 바뀌게 되었고, 엄마손잡고 처음으로 가본 동네 만화방에서는 그 선생님이 카운터에 계셨다. 새로 만화방을 개업하신 것이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만화책, 드래곤볼. 그게 운명이었을까.

어쩌면 운이 나쁘게도 내 인생의 첫 만화가 드래곤볼이었기에, 그냥 드래곤볼만 보고 또 보고 계속 봤을 뿐 성에 차지 않는 다른 작품들은 거의 볼수 없게 되었다. 재미가 없게 느껴졌기에.

 

일본 만화 3대 명작





일본에서는 3대 만화라는 것이 있었다. 그냥 웹서핑 하다가 봤던 것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 글 자체가 누군가의 주관에 의해 적혀진 것일수도 있었지 싶다. 하지만 선정된 작품들의 라인업이 꽤나 그럴듯해보여서 그냥 아직도 내 기억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 그게 200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유유백서는 한 발 뒤로 물러가고 나루토, 원피스 등이 함께 거론 되며 일본 만화 4대 명작으로 불리우는 것 같다. 하지만 그순간에도 드래곤볼은 언제나 제일 위에 자리잡고 있다. 드래곤볼 gt, 드래곤볼 super 등으로 비난과 조롱도 듣는 요즘이지만, 그냥 드래곤볼은 여전히 ‘대장’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

드래곤볼 작품 만드는데 뭐하나 도움된 것도 없으면서 괜히 뿌듯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토리야마 아키라

토리야마아키라 캐릭터

드래곤볼 만화책 단행본을 한권 한권씩 읽다보면, 맨 앞에 작가의 인사말이 있다. 나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 인사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어릴적부터 도시락을 챙겨 동네 영화관에 주구장창 앉아서 영화를 보며 보냈다는 그의 소년시절이, 머릿속에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 그 장면을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자신만의 힘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드래곤볼은 내가 인생에서 처음 본 만화책이었고 이때문에 작품의 한 컷 마다 역동감, 작화수준이 얼마나 높은 지는 크게 느껴오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다른 만화는 성에 안차고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완결은 커녕 첫 1~2권도 제대로 본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비교하게 된적이 없었다.

나이를 먹고나서 다른 작품들을 보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려지기 시작했던 그 작품의 작화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이제서야 실감하고 있다. 만화작가들의 작화수준이 매우 높아진 요즘에서야 명작으로 떠오르고 손꼽히는 그런 작품들과 그 옛날에 그려진 드래곤볼을 비교 선상에 나란히 놓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클라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좋아하는 드래곤볼 캐릭터

드래곤볼의 미래에서 온 트랭크스

드래곤볼에서 내 최애 캐릭터는 미래에서 온 트랭크스다. 뭐 소년만화의 특성상 사실 카카로트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깊고 입체적인 캐릭터는 트랭크스다.

미래 트랭크스 에피소드를 어릴때 접하면서 정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타임머신이 실제로도 존재할수있을까? 그러면 미래의 나는 무엇을 하고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1단계 셀이 처음 등장하는 그 마을 씬은 정말 어린나이에 엄청난 공포였어서, 어릴적 악몽에서도 셀에게 쫓기는 장면 너무 많이 나왔었다. 토요미스테리 극장도 안무서워했던 내가 1단계 셀 만큼은 너무 무서워했다. 완전체 셀이되며 좀 잘생겨져서(?) 그나마 그 공포증이 좀 사라졌던 것 같다.

모든 전사들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싸워나가는 트랭크스. 드래곤볼이라는 마지막 카드도 없고, 함께 싸워줄 동료도 없고, 자신이 끝나면 대항할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배수의 진에서 싸워나가는 10대의 소년 캐릭터는 그 미래세계에서는 손오공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약간은 다크하고, 천하무적이 아니고, 하지만 결국 극복해내는, 손오공 보다는 조금더 현실적인 주인공.

 

토리야마 아키라를 통해 내가 배웠던 것.





그는 누가 뭐래도 지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만화가중에 한 명이다. 아마 대대손손 저작권료 하나로도 남부럽지 않은 부를 거머쥐고 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토리야마 아키라를 통해, 역설적으로 실패의 소중함에 대해 느낀다. 그의 만화가 모두다 흥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나이 때부터 승승장구하는 운동선수,

나오는 작품 마다 흥행기록을 세우는 흥행 보증수표인 배우,

얼마 준비도 안했는데 국가고시에 떡하니 합격하는 똑똑한 사람 등

‘승리자’들이 SNS나 미디어 등에 너무나도 많이 나오는 요즘이다.





그래서 자꾸 비교하게 된다. 나는 실패자, 나는 뒤쳐지는 사람, 나는 지금 내 나이대에 해야하는 ‘중간치’도 못하는 사람…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심지어 나는 이미 늦었다며 많은 여러가지들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지 실패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의 영역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토리야마 아키라도 흥행시키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 그 드래곤볼 마저도 연재 초창기때는 인기를 많이 얻지 못했었다.

나는 관심있는 무언가가 생기면 검색해보고, 찾아보고, 보고 또 본다. 드래곤볼 만화가 좋아서 기름종이를 사다가 만화책에 대고서 따라그리고, 비디오대여점에 가서 애니메이션도 대여해서 보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는 드래곤볼 작가라는 키워드로 검색도 해보며 토리야마 아키라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작품이 드래곤볼이 전부가 아니며 그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드래곤볼의 원작자’가 되었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 드래곤볼의 원작자.

나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는 훗날이 왔을 때, 내가 해낸 ‘작품들’의 원작자가 될 사람이다. 그 작품이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이라도 큰 귀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드래곤볼이 우리에게 준 것.

드래곤볼 손오공

언젠가 한 지인에게서 내가 드래곤볼 손오공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생전 처음 듣는말에 이유를 물어봤었다.

그냥 어려운 일이나 힘든 상황에서도 웃는다고,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그 상황을 이야기하며 그냥 해나간다고. 그리고 내가 드래곤볼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이런 내 캐릭터를 보고 손오공 같다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그냥 단순히 내 어린시절의 한 페이지를 아주 재밌고 위대한 만화와 함께 보내기만 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라는 사람은 그의 작품을 통해 큰 영향을 받고, 만들어져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모습까지도.

그리고 이런 사람은 비단 나 한명 뿐만이 아닐 것이다.

편하게 잠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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